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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1-01-10
  • 한형동 칭다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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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제도를 폐지하고 노동자 계급을 해방하는 투쟁은 정당에 의한 의회 활동을 통해서는 불가능하므로 노동자의 직접 행동에 의해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프랑스의 혁명적 생디칼리즘(syndicalisme)이론가 <조르주 소렐>이 “폭력론”에서 주장한 말이다. 반 의회주의와 노동자의 폭력 혁명을 선도하는 섬뜩한 표현이다.

한형동 칭다오대 석좌교수

지난 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미 의사당에 난입, 폭력을 휘둘러 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1908년 <조르주 소렐>이 주장한 그대로 “반 의회주의의 폭력투쟁”이 세계의 민주주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것이다. 물론 이 사태의 배후에는 희대의 정치 난폭자 트럼프의 선동이 자리하고 있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번 폭력사태에 대해 미 언론들은 “현대사에서 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이라고 개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시위가 아니라 반란 사태"라고 강력하게 규탄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정책 대표는 “오늘 밤 미국의 민주주의는 포위됐다. 이건 미국이 아니다”고 미국 민주주의의 종언을 토로했다.

여기서 이번 사태발발의 원인을 규명해 보자. 이는 두말할 나위 없이 트럼프의 독선과 선동정치에 더해 과분한 정권연장 노욕이 빚어낸 결과다. 트럼프는 원래 정치를 모르고 이재(理財)에만 일가견이 있는 장사꾼 출신이다. 오죽하면 미국의 정치칼럼리스트 <찰스 크라우트 해머>는 “트럼프는 마치 한 살짜리 아기와 같다. 그는 매사를 자기 이익과 부합시켜 따지는 프리즘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라고 혹평했다. 트럼프는 집권 후 4년 내내 국민 갈라치기, 인종차별, 트위터 선동, 북한과의 정치도박 등에 열중했을 뿐이다. 또한, 야당 및 언론과의 전쟁, 우방국들과의 불협화음 제조기 역할 등도 간단없이 수행했다. 그러더니 결국은 작년말 대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낮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처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서 “대선에서 승리를 도둑맞았다“고 외쳤다. 급기야는 한밤중에 봉창 두드리는 억지 궤변과 함께 자기 지지자들을 선동하여 반란수준의 폭동을 야기시켰다. 이로써 세계의 리더로서 국제규범을 제정하던 주요 행위자(Key Player) '미국'의 국위는 졸지에 나락으로 추락되고 말았다. 200여 년간 숭고한 인권의 피로 꽃피운 미국의 민주주의가 이제 조종을 울리고 있나 생각하니 암울한 정서가 온몸에 퍼진다. 

트럼프는 국제정치체제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모르는 문외한이다. 그의 국제관계에 대한 무지의 현주소를 <볼턴>의 회고록을 인용해 들어 보자. 트럼프는 하노이 회담 중에 <볼턴>에게 ”우리가 이야기한 북한 비핵화의 정의가 무어냐?“고 물었다. 그는“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CVID; 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를 외우지도 못한 것이다. 그는 또 볼턴에게 “미국이 1만 킬로미터나 떨어진 북한에 경제제재를 가하는 이유가 뭐냐?” 고 물었다. 그야말로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아니 미국 대통령이라는 자가 미국의 대북제재 목적도 모르고 대북 정상회담에 나섰단 말인가? 어디 이뿐인가? 그는 “미국이 왜 엄청난 돈을 들여 주한미군을 유지하며, 막대한 훈련비를 낭비하느냐?”고 강변하는 자다. 국제사회에서는 아무리 최강의 국가라 해도 단독으로 완벽한 안보상태를 유지하기는 불가능하다. 이것을 “안보의 딜레마(The Security Dilemma)”라고 한다. 따라서 국제사회는 안보의 딜레마를 완화하기 위해 상호 협력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에 미국은 “동북아 역내 안정”이라는 국제협력의 명분으로 한국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있다. 이런 이치를 모르는 트럼프는 경제적 비용만 생각하여 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나폴레옹>은 “정치란 무능력, 무지, 수치, 권모술수 등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영역이다”라고 갈파했다. 이번에 이 명언을 트럼프가 웅변으로 잘 실증해주었다. 

이러한 트럼프의 “감성에 의해 이성을 잃는 이단아” 행각은 한국을 비롯한 많은 민주국가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국민이 원하지 않는 리더십의 작용은 이번 미국의 의사당 난입 사건처럼 불행한 사태를 초래한다. 우리나라의 위정자들도 국민이 원하는 미래지향적이고 정의로운 리더십이 작동되고 있는지 엄중하게 성찰해 보아야 할 것이다. 혹여 민주를 가장한 중우정치(Ochlocracy, 衆愚政治)나 파시즘(Fascism) 색채는 없는지, 헌법과 삼권분립 정신은 온전히 유지되고 있는지 냉철하게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나아가 국민 갈라치기 수법은 없는지, 집권욕에만 눈이 어두워 국민을 기만하고, 언론을 통제하고, 국가의 장래는 아랑곳 하지 않고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는 일은 없는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후르시 쵸프>는 “정치가란 습관적으로 거짓말을 해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못하면서 선거 때 입으로만 서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다.” 라고 했다. 오늘날 우리 정치가들 중에서 이 명언에 가슴 뜨끔할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치가와 기저귀는 정규적으로 갈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도 자신이 불의와 정의도 구분 못하는 정파에 물들어 있지는 않은지, 특정 지도자에 대한 광신적 팬덤 세력의 일원은 아닌지 통절한 자기비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

 “덕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을 때에 뭇별들이 그를 향해 받드는 것과 같다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이는 논어의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치국의 명언이다. 한 나라의 최고 통치자는 덕으로 정치를 하면 국민들의 존경을 받지만, 사술과 폭력으로 치국을 한다면 자신과 국가의 공멸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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