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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0-01-01
  • 한형동 칭다오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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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형동 칭다오대 석좌교수


존 F. 케네디는 “정상에서 만나는 것이 벼랑에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좋다”고 했다. 이는 국가 정상들이 자국의 국익과 자신의 명성을 걸고 펼치는 “위험하고도 장엄한 한판 승부” 정상회담(summit)을 두고 한 말이다.


최근 한중일 3국은 중국에서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향후 10년 3국 협력비전”을 발표했다. 3국 정상회의 정례화 추진과 FTA 가속화 등에도 합의 했다. 하지만 한일정상회담에서는 징용문제 등의 이견으로 합의문 발표에도 실패했다.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한국측이 중국측에 사드 문제로 촉발된 한한령(한류 금지령)해제를 요구했으나, 중국은 명쾌한 답변 없이 잘 해결되길 바란다고만 했다. 오히려 미국 중거리 미사일의 한국배치에 우려를 표시하고, 시진핑 방한 초청마저 사드 및 미사일 배치문제와 연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는 중국으로부터 현안 해결은 커녕 외교적 숙제만 안고 온 셈이다.


이토록 초라한 회담 성적표를 들고 온 원인을 분석해보면, 이는 우리 외교라인의 전문성 및 전략부재에 더해 지도자와 보좌진들 간의 성숙된 팀플레이 결여, 회담상대국 실무자간 교감 부족 등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1985년 레이건과 고르바쵸프의 제네바회담은 상대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지도자와 보좌관들 사이에 활력 넘치는 콤비 플레이 덕분에 냉전의 평화적 종전을 성사시켰다.


외교라는 게임에서 성공의 단초는 상대방에 대한 정보(intelligence)이다. 외교협상에서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없으면 이미 진 게임장으로 들어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중일 양국 정부와 갈등수위가 높은 데다 상대국 핵심층에 파이프라인을 가진 맨파워나 이면 협상가(covert negotiator)도 없으니 정보력 부족은 당연할 것이다. 이 또한 이번에 예견된 외교성적 부진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한편, 3국의 협상태도를 보면, 국력의 차이가 극명하게 나타난다. 시진핑은 자기가 본 회의장인 “청두”로 가면 될 것을 문대통령과 아베를 베이징으로 불렀다. 그는 또 문대통령 면전에서 한국의 혈맹인 미국을 세계평화 위협의 장본인이라고 무참하게 비난했다. 이는 “협상테이블에서 힘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으면 협상은 항복의 다른 이름에 불과하다”는 슐츠의 외교명언을 실감케 했다. 허나, 외교무대에서는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외교언행을 구사하는 것이 정석이다. 따라서 중국의 이런 외교행태는 전제군주체제에서 공산독재체재로 직행한 외교 문맹국의 태생적 한계라고 치부해 마땅할 것이다.


일본 아베는 중국측에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지역안보에 심각한 위협이라고 규탄한 후, 홍콩정세에도 우려를 표시함으로써 시진핑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정상은 도발을 일상화하는 북한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못한 채 시진핑의 국가 모독적 발언만 다소곳이 청취했다. 이 차이를 우리는 여하히 해석해야 휴지조각처럼 구겨진 국격을 만회할 수 있는가? 정상회담 연구가인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정상회담에서 성공할 수 있는 필수적 마음가짐은 빈손으로 일어나도 상관없다는 배짱과 확신이다” 라고 했다. 우리 국민들도 이런 신념으로 세계 어느 강국과도 당당하게 협상하는 국가 원수를 보고싶어 할 것이다.


우리는 왜 북한이나 중국 등 공산국가들 앞에만 서면 왜소증을 보여야 하는가? 이를 국익을 위한 통 큰 양보나 전략이라고 미화한다면 큰 오산이다. 그것은 공산독재국가에 대한 전략 부재에 기인한 현상이다. 공산독재국들에게는 절대로 어설픈 양보나 약세를 보이면 안된다. 그들은 그럴수록 상대를 경멸하며 자기 욕심만 채우려 한다. 영국이 히틀러에 당한 뮌헨회담은 “민주주의가 독재자에게 굴복하면 필연적 참사를 낳는다”는 교훈을 남겨 주었다. 또한 외교학의 대부 닡콜슨 경은 “현대 외교관들은 신용의 획득과 신뢰의 창조에만 더 이상 의지할 수 없다. 공산주의자들은 사실을 주저 없이 왜곡하고, 표리부동이 폭로되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북방 주변이 공산독재국가들로 둘러 쌓인 우리가 깊이 새겨야 할 외교금언들이다.


그 다음 유관국의 언론보도 및 홍보 상황을 보자. 중국 환구시보는 문재인 대통령이 홍콩이나 신장 문제는 중국 내정이라고 인정했다며 이를 대서특필했다. 문대통령이 시진핑의 말을 청취한 후 “잘 이해했다”고 의례적으로 긍정표시 한 것을 확대 왜곡한 것이다. 이는 중국이 자국입지의 정당화와 한미이간을 노린 고도의 심리전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문대통령의 답변요령이다. 상대방 언급내용 중 다소 우리에게 불리하거나 오해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 있으면, 대답을 생략하고 다음 화제로 넘어갔어야 했다. 외교언어에서는 행간을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사용된 말의 속뜻을 읽어야 하며, 무엇이 언급 안 됐는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도 헤아려야 한다. 외교언어에는 항상 코드가 숨어있기 때문이다.


일본 마이니치 신문은 한일간에 징용공 문제나 수출규제 문제 등에서 상호 이견을 노정했으나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는 인식의 일치를 본 것은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산케이 등 우파 언론들은 한국이 위안부 합의 및 징용군 배상판결 문제 등에서 국제규범을 위배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대답이나 반격을 해야 한다. 답변이 궁색하다면 차라리 재 협상하여 이러한 공격의 빌미를 차단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국제규범 위반자로 인식되면 국제사회에서 입지가 위축되고, 일본과 우호관계에 있는 국가들에게는 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한일 갈등을 정리한 후에는 우리가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나 비이성적 수출규제 등 야만적 작태에 대해서는 서슬이 시퍼렇게 따지고 질타해야 한다.


총체적으로 이번 3국 정상회담은 중국이 주최국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사전에 용의주도한 준비로 전략적 성공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그들은 한일 양국정상을 불러놓고 역내 패권국이라도 된 듯 방자한 위세를 보였다. 또한 한중일 협력강화 합의를 대미압력의 초석으로 포장하여 선전도 했다. 게다가 한미일 협조체제를 이간시키려는 목적도 어느 정도 달성한 것으로 풀이된다. 소위 기회만 있으면 작은 이익이라도 챙긴다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의 36계 전략을 잘 구사한 것이다.


한 국가의 내치는 실수하면 다음 선거에서 부활이 가능하지만, 외교는 연습을 허용하지 않는다. 한번 큰 실수를 하면 국가가 치명타를 입는다. 그래서 외교관을 총없는 전사라 부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번 회담을 계기로 좋은 교훈을 얻어야 할 것이다. 외교정책결정 이론 (foreign policy decision-making theory)은 정책 결정자, 대외정책 목적, 환경적 요소, 정책결정과정 등을 주요 분석 항목으로 한다. 우리는 이번 회담에서 정책 결정자가 국제정치체제에 대한 가치관은 선명했는지, 이념의 편향은 없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환경적 요인 면에서는 국내의 여론 및 정치상황을 의식해서 성급하거나 저자세 행태는 안 보였는지, 정책결정 과정에서는 행위자(player)들에 대한 다양한 의견수렴 기제(mechanism)가 제대로 작동했는지 점검이 필요하다. 끝으로 외교정석에 입각하여 설득과 협상, 위협 등 외교방식 전반에 걸쳐 만전을 기한 외교행위가 수행되었는지 성찰이 필요하다.


토마스 A 베일리는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며, 최상의 차선책의 예술이다” 라고 갈파했다. 정상회담은 성공하면 위대한 역사를 만들지만, 실패하면 자신이 상황의 희생자로 추락하기도 한다. 이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상회담이 최상급 차선의 예술경지에 도달하도록 외교정책 담당관들은 물론, 국민 모두 지혜를 모아 외교선진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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