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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25-07-07
  • 한형동 칭다오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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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나무는 천년이 되어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이는 조선시대 최고의 선비요 문필가인 신흠 선생의 글로서 고매한 선비의 절개를 잘 웅변해주고 있다.

한형동 칭다오대학교 석좌교수

세계의 유구한 문화와 전통을 가진 국가에는 그 국가의 특유한 민족정신이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사대부 정신, 영국의 신사도 정신, 일본의 무사도 정신이 그것이다. 우리 한국에는 "선비정신"이라는 것이 있다. 이 선비정신은 유학사상에 기반하여 이념화된 조선시대의 시대정신이기도 했다. 이 사상은 학문수학을 전제로 인의와 예절을 숭상하고, 청빈락도(淸貧樂道)의 생활을 추구한다. 게다가 향기 높은 문학과 풍류까지도 곁들이는 매우 고결한 정신사적 체계를 구비하고 있다. 선비들의 주요 행동 강령은 정의와 법도, 명예와 지조, 그리고 자기성찰이다.

춘추시대 위나라 충신 석작(石碏)은 자기 아들이 역모에 가담하자 왕에게 자기 아들을 처형해 달라고 간청한 후 자기 가신을 시켜 아들을 죽였다. 여기서 대의멸친(大義滅親)이란 말이 나왔다. 또 백제시대 성충(成忠)은 의자왕이 타락하자 이를 시정토록 간언하다가 투옥되어 “기벌포를 지키고 전쟁에 대비하라”는 절규를 남긴채 옥사하였다. 이러한 충신 열사들의 정신에는 바로 선비사상이 기저에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 이런 충신이 있었다면 소시오패스 윤석열의 망국적 계엄을 저지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12.3이라는 한국 정치의 파산선고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러한 고귀한 선비정신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반도덕적 반이성적 이기주의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국가를 운영하겠다는 정치가들은 사리사욕과 정권 쟁취에만 혈안이 되어 온 사회를 갈기갈기 찢으며, 국민분열과 모랄해저드(moral hazard)에 함몰되어 가고 있다. 정가에는 진정한 정치인(statesman)은 안 보이고 정상배(politico)들이 판을 쳐, 배신과 모략은 정치의 주요 수단이 되고, 불의가 정의를 구축하는 가치전도의 세상이 된지 오래다. 우리 정치인들의 언어를 보자! 살기등등한 표정 속에 보복, 음모, 궤멸, 철퇴 등 듣기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폭력적 언어가 언론의 장에 난무한다. 국가의 백년대계를 위한 비전과 정책은 없고 정의와 법치, 통합과 민생은 선거철 정치캠페인의 상투적 수사일 뿐이다. 이게 바로 “바다가 있는 곳에 해적이 있고 정치가 있는 곳에 정치가가 있다”는 그리스 속담이 빛을 발하는 이유다.

정치의 기본적 덕목인 정의란 자신에게 유리한 규율이나 의리가 아니다. 또한 자기가 외쳐놓고 성공하면 스스로 짓밟는 원칙도 아니다. 정의는 민주사회에서 가장 보편적 가치로 존중되어야 할 엄정한 이념적 요소다. 정치 또한 원칙 위에 군림하는 치외법권적 행사도 아니고, 민중의 고통을 담보삼아 흥정하는 얄팍한 게임은 더욱 아니다. 정치란 무릇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위해 멸사봉공(滅私奉公)의 정신으로 봉사하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기술이다. 

정치를 잘해야 국민이 행복하고 편안한 태평성대가 온다. 그러기에 오늘날 우리 사회의 급선무는 검찰과 사법부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 이권만을 추구하는 3류의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사생결단의 극단적 제로섬(zero-sum) 경쟁이 아닌 국민통합과 상생을 지향하는 성숙한 민주정치를 해야 한다. 따라서 정치 개혁은 국회의원 특권폐지 및 정원감축, 저질 의원 퇴출, 무노동 무임금 적용, 엉터리 비례대표제 개정과 함께 정의롭고 유능한 국회의원 선출 등이 선행되어야 한다. 물론 정치 개혁의 제도적 장치인 개헌이 중차대함은 말할 나위 없다. 

우리의 정치 구도는 한 정당이 상대 당을 적으로 보는 극단적인 양극화가 그 전형을 이루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를 죽음의 계곡으로 몰아넣는 단초로 작용한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Steven Levitsky) 교수는 “민주주의는 훌륭한 헌법과 법률로만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정당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는 상호관용(mutual toleration)과 권리행사 시 자제(forbearance)라는 규범도 중요하다”고 했다. 이것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연성 가드레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오바마가 집권하자 공화당은 민주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오로지 승리만을 위해 자제의 규범을 버렸다. 그 후 미국은 당파적 양극화가 심해 상호 비방과 불인정이 심화되면서 트럼프와 같은 독선적인 선동자가 재차 권좌에 오르는 기현상을 낳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명심해야할 대목이다. 윤석열처럼 상대 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매도하거나, 민주당처럼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 패키지로 입법 독재를 획책해서는 안된다. 이 모두가 민주주의의 부정이요 퇴행이다. 특히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은 넓은 아량과 금도로 야당을 품으며, 효율적인 협치에 힘써, 오만한 독재집단으로 투영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치국의 경전 서경에는 “덕이 있어야 정치를 잘하고, 정치는 백성을 잘 보양하는데 있다.(德惟善政 政在養民)”고 했다. 우리 위정자들이 극단의 대립정치에서 탈피하여 덕성과 포용의 정신으로 난파선이 된 대한민국호를 잘 인양해 재도약의 번영을 이루는데 각고의 노력을 경주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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